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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발자취

지리산 연곡사

by 에코j 2023. 8. 12.

여름휴가시즌이라 피아골은 물놀이 나온 사람이 아주 많네요

난 아지트에서 쉬다가 오랜만에 지리산 피아골 연곡사에 들려 보았네요.

연곡사는 오랜만에 들려 보았는데 엄청 많은 변화가있네요. 국보와 보물은 처음으로 보았네요.

연곡사는 백제 성왕 22년(서기544)에 인도의 고승인 연기조사가 창건한 사찰이다. 연기조사가 처음 절의 터를 잡을 적에 이곳에 큰 연못이 있어 물이 소용돌이치며 제비들이 노는 것을 보고 연곡사라 이름하였다 한다.

통일 신라 말에서 고려 초기에 선종사찰로 번성하였고 도선국사, 현각선사 등 많은 고승대덕이 배출되었다.

조선시대 임진왜란 당시 연곡사 스님들이 승병활동을 했던 보복으로 왜군에 의해 완전 전소되었으나 임란 이후 소요태능스님이 중창불사를 하여 400여 스님들과 더불어 이곳에 충림을 개설하고 선풍을 일으켰다.

1907년 연곡사가 항일의병의 근거지라는 이유로 다시 일본군에 의해 완전 전소되었고, 1950년 6:25전쟁으로 또 다시 전소되는 수난을 겪었다.

현재 국보로 지정된 동승탑(국보 53호), 북승탑(국보 54호)과 보물로 지정된 삼층석탑(보물 151호), 현각선사탑비(보물 152호), 동승탑비(보물 153호),소요대사탑(보물 154호) 등의 석조물만이 유적으로 남아 전해오고 있으며 1980년대 이후 중흥불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연곡사의 법당 남쪽에 서 있는 석탑으로, 3단의 기단(基壇) 위로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이다.

기단의 각 층에는 4면의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 모양을 본떠 새겨 두었다. 탑신은 몸돌과 지붕돌이 각각 하나의 돌로 되어 있으며, 각 층의 몸돌에도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을 본떠 새겼다. 지붕돌은 밑면의 받침이 각 층마다 4단이고 처마 밑은 수평이다. 또한 윗면에는 경쾌한 곡선이 흐르고, 네 귀퉁이에서의 치켜올림도 우아하다.

맨 윗기단이 매우 넓어졌으며, 이에 반하여 탑신부는 줄어든 느낌이 있지만, 맨 아래 기단부터 꼭대기에 이르기까지 체감비율도 온화하며 안정감이 느껴지는 아름다운 탑이다. 탑에 사용된 돌의 구성양식 등으로 미루어보아 건립연대는 통일신라 후기로 짐작된다.

석탑의 3층 지붕돌은 밑으로 떨어져 있었는데 1967년 해체하여 수리할 때에 복원되었다. 이 때 윗층 기단 안에서 동조여래입상 1구가 발견되었다.(국보제51호)

구례 연곡사 동 승탑비

승탑비는 승탈과 팩을 아루어 세운 비이다. 구레 언곡사 동 송탑비는 통 승탈 앞쪽에 서 있는 비이다. 비석의 몸물인 비신은 없어지고 받침들과 머릿돌만 남아 있다. 머릿들은 구를 속에 용 5마리를 생동감 있게 요시하고 있으며, 꼭대기에는 불꽃에 현싸인 보주(꽃했)"를 조각해 놓았다. 머릿들의 세밀한 조각과 날개를 갓춘 발침둘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받침들은 뿔이 하나 달린 용 모양의 머리, 날개 달린 거북 모양의 등을 갖춘 상상 속의 통물인 '연'을 형상화한 것이다.

용의 등 중앙에 비를 끼우도록 마련한 비좌는 구름무늬와 연꽃무늬로 장식해 놓았다.

동 승탑과 짝을 이루어 만들어진 통일 신라 시대의 비이다. 보물제153호

구레 연곡사 동 승탑 I

승탑은 이름난 스님들의 사리를 모시는 곳이다. 구례 연곡사 동 승랍은 통일 신라 시대의 사리탑 가운데에서 가장 형태가 아름답고 장식과 조각이 정교한 작품이다.

맨 아랫돌에는 구름 속의 용을 팔각으로 장식하였고, 그 위의 중대석 받침에는 면마다 형태가 다른 사자상을 새겼다.

지붕돌은 목조 건축의 지붕 양식을 충실하게 따르고 있는데, 기왓골, 처마, 기와 각 부분의 장식이 매우 섬세하다. 지봉 아랫면에는 구름무늬와 여자 선인(t시)을 조각해 놓았다. 지봉마루 촉면에 작은 종을 걸었던 구명이 있고, 그 윗부분에는 잡상(# )"을 연었던 혼적이 있다. 탑의 가장 윗부분은 연꽃, 봉황, 보주 등으로 세밀하고 아름답게 장식하였다. 도선 국사의 사리가 안치된 탑이라 전해은다. 일제가 동경대학으로 반출하려고 하여 없어질 위기도 있었으나 다행히도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통일 신라 후기를 대표하는 우수한 작품이다.(국보제53호)

잡상 :궁전이나 전각의 지봉 위 네 귀에 여러 가지 신상을 새겨 없는 장식 기와. 국보제53호

구례 연곡사 북 승탑

송탑은 이름난 스님들의 사리를 모시는 곳이다. 구레 연곡사 북 송탈은 네모난 바닥 들 위에 세워진 8각청의 승답이다.

전체적으로 규모와 형태, 각 부분의 장식과 조각이 연곡사 동 승탈과 악간 차이가 날 뿐 거의 동일한 모습이다.

기단은 3층으로 야래 받침들, 가운데 받침들, 위 받침들로 이루어저 있다. 아래 받침들은 2단인데 이래에는 구름무늬, 위에는 두 검으로 된 연꽃무늬 16있을 새겼다. 위 받침를 역시 두 단으로 나누어 연꽃과 돌난간을 아래위로 꾸였다.

나를 돋을새김 하였다. 특히 위폭의 단에는 동근 테를 두르고, 그 속에 블교의 낙원에 산다는 극락조인 가통빈가 탑신의 몸돌 각 먼에는 항로와 불법을 수호하는 방위신인 사천왕상 등을 꾸며 놓았다.

이 승담은 연곡사 동 승답을 모방하여 고려 초기에 건림한 것으로 추정한다. 사찰 내에 현각 선사 탑비가 있는 것으로 보아 현각 선사 승탑으로 추정하며, 8각형 승탑을 대표할 만한 출등한 작품이다(안내판내용) 국보제54호

연곡사는 통일신라시대에 연기조사가 창건하였으며, 고려 전기까지 선을 닦는 도량으로 이름이 높았던 사찰이다. 이 탑은 연곡사 서쪽에 있으며, 소요대사의 사리를 모셔두고 있다. 승려의 사리를 두는 탑신(塔身)을 중심으로 그 아래에 기단(基壇)을 두고, 위로는 머리장식을 얹었으며, 각 부분이 8각으로 이루어져 있다.

기단은 3단으로 나누어 각 단마다 연꽃무늬를 새겼으며, 그 위로 탑신을 받치도록 두툼한 괴임을 둔 점이 독특하다. 탑신의 몸돌은 한 면에만 문짝 모양을 새기고, 다른 곳에는 8부신중상(八部神衆像)을 돋을새김해 두었다. 지붕돌은 여덟 곳의 귀퉁이마다 큼지막하게 꽃장식을 얹어두었으며, 꼭대기의 머리장식은 비교적 완전하게 남아 있다.

연곡사에는 이외에도 2기의 탑이 더 있는데, 그 탑들에 비해 조형성은 떨어지지만 각 부분의 비례가 아름다운 작품이다. 탑신에 새겨진 기록을 통하여 조선시대 효종 원년(1650)에 세웠음을 알 수 있다.

보물제154호

연곡사에 있는 비(碑)로, 고려 전기의 승려 현각선사를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이다. 임진왜란 당시 비몸돌이 없어져 현재는 받침돌과 머릿돌만 남아 있다.

비를 받치고 있는 돌거북은 부리부리한 두 눈과 큼직한 입이 웅장하며, 수염을 가진 용머리를 하고 있다. 등 중앙에 마련된 비를 꽂아두는 부분에는 안상(眼象)과 꽃조각이 새겨져 있다. 받침돌 위에 놓여 있는 비의 머릿돌에는 여러 마리의 용이 서로 얽힌 모습이 조각되어 있는데, 긴밀하고 사실성이 두드러진다. 앞면의 가운데에는 탑이름이 새겨져 있어, 현각선사의 탑비임을 알수 있다.

기록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이 비는 고려 경종 4년(979)에 만들어졌다.보물15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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