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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발자취

백두산 여행 후기

by 에코j 2023. 9. 18.

1. 언제 : 2023. 9. 15~18(3박4일)
2. 어디 : 백두산
3. 참석 : 11명(임노욱, 전종신+박순이, 최민경, 샘물+이혜선, 삼치구이, 김혜경, 우주연, 권혜리, 최경숙)
4. 후기
갑자기 백두산 이야기가 나와 백두산에 가본 사람보다 못 가본 사람이 더 많아서 백두산을 가보자고 결정하고 문오남사장한테 백두산 일정을 물으니 91534일 일정이 있단다. 그래서 추진해 보기로 하고 참석자를 모집하니 10명이다. 결정하고 비행기표를 예매를 마쳤는데 민경이가 어디에서 들었는지 백두산에 자기도 간단다. 그래서 11명으로 최종 참석자를 결정한다.
전에 카자흐스탄을 다녀온 멤버들이라 사전 미팅 없이 바로 청주공항에서 만나기로 한다. 서울에서 내려오는 분들은 완도에 삼치구이님이 오송역에서 만나서 청주공항으로 모시고 오기로 하고, 전주팀은 월드컵경기장에서 만나 짐이 많아 샘물님 차와 내차로 공항으로 이동.

청주공항에서 t'way항공 tw 685 08:40 비행기를 타고 연길로 이동

 

09:55분에 연길공항에 도착, 현지가이드 이철옥씨를 만나 출발 전에 기념촬영

 

중국에서 본격적인 여행 시작 전에 해리아식당에서 연변냉면으로 점심식사. 나름 맛있었다

 

도문으로 이동 두만강을 경계로 북한에 남양시를 바라본다. 대홍수로 건물을 새로 지어서 그런지 건물은 아주 좋아 보인다.
도문은 본래 옥저(沃沮)였다가 고구려의 영토가 된 지역이다. 당대 이후 발해국 현덕부에 속했다가 요대에는 여진, 원대에는 개원로 남경만호부, 명대에는 노이간도사(奴爾干都司)로 불렸다. 청대에는 동북지역이 봉금지대(封禁地帶)로 설정되면서 약 200여 년간 황폐한 곳으로 남았다가 1913년에 이르러서야 연길현이 건설되기 시작하였다. 1925년에는 20여 호가 거주하였으며, 1931년에는 약 100호의 주민이 마을을 이루면서 탄막동을 도문으로 개칭하였다. 1934년에 간도성 연길현 도문시로, 1936년에는 도문가가 되었다.
행정구역은 월청 · 석현 · 장안 · 양수 등 4개의 진()3가도(街道), 60여 개의 행정촌으로 구성되어 있다. 2014년 기준으로 인구는 약 12만 명이며, 그중 조선족이 약 65,000명으로 전체 인구의 약 54% 점하고 있는 조선족 집거지역이다. 북한 · 중국 교류의 상징인 도문대교와 도문철교를 통해 양국의 물자 교류가 오랜 기간 지속되어 왔으며, 인근의 백두산과 용정, 연길, 훈춘 등 항일독립운동 유적지와 조선족 문화가 남아있어 이곳을 찾는 한국관광객의 발길이 매우 잦은 곳이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유람선도 있나 본데 한국 사람은 탈 수 없단다.

 

두만강 다리가 새로 만들어졌다도문시를 연결하는 도로 · 철도 · 항운 교통은 인근의 동북아시아 금삼각(金三角, 황금트라이앵글)지대이자 장길도개발계획(長吉圖開發計劃)’의 주요 경로인 연길, 훈춘, 북한의 나진-청진, 러시아의 하산-블라디보스토크를 연결하는 운송로의 중심에 해당한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북한과 경제를 알리는 87호 경계석 
 

한복을 입고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대여도 해주나 보다.

 

한복을 입고 동영상을 찍고 있는 한무리들.

 

두만강 지역에 2016년 8월 29일부터 9월 2일 사이, 태풍 라이언록이 동반한 폭우로 인해 이재민이 14만 명 발생하고, 138명이 숨지고, 400여 명이 실종되어 500명 이상이 사망하거나 실종된 대참사(나무위키) 큰 홍수 복구한 기념으로 "홍수투쟁승리기념비"를 세워두었다.
 

 

용정은 만주족이나 한족이 아닌, 조선족이 개척한 도시이다. 용정시에 있는 이 용두레우물은 용정시의 이름이 붙게 된 기원이 되는 곳으로, 이 샘으로 인해서 이곳에 마을이 들어서게 되었다. 지금은 그 자리에 용정지명기원지정천(龍井地名起源之井泉)이라고 쓰인 비석과 함께 1986년 용정현 인민정부에서 복원한 우물이 남아 있다 이 우물은 본래 이 지역에 살던 만주족들에 의해 사용되던 우물인데, 1879년부터 1880년대 사이에 조선에서 넘어온 청년 장인석·박인언이 다시 발견하였고 우물가에다 '용두레'를 세웠다. 이후 1934년 용정촌에 살던 주민 이기섭의 주도 하에 우물을 수선하고 약 2m 높이의 비석 1기를 세워 '용정지명기원지우물'이라고 새겼다. 그러다가 문화 대혁명 때 파괴되었던 것을 1986년 용정현 인민정부에서 우물을 새로 파고 비석을 세웠다.(나무위키),
용정의 유래 용두레 우물인데 물은 없고 쓰레기만 가득하네요.  용정지명기원지우물을 둘러보고 이도백하로 이동하면서 용문교 해란강, 일송정은 차창너머로 보고

 

 

이도백하에서 송이불고기 전골로 저녁을 맛있게 먹고.

 

식사후 야간 조명이 아름다워서 걸어서 숙소로 이동하면서 이도백하의 야경을 체험해 본다.

 

 

이곳 노점에서 꼬치구이도 팔던데 배가 불러서 먹어 보는 것은 패스

 

이런 시설도 만들어 놓았네요.
 

나름 이도백하의 야경이 아름다웠다.

 

우리가 머문 이도백하에서 가장 좋은 호텔, 배모양의 조명이 특이한  "THE PARADISE OF CHANGBAI RESORT HOTEL"에서 하루 일정을 마무리한다.

 


 

2일 차 일정은 서파로 해서 백두산에 올라 천지를 보는 거다. 새벽에 일출이 보일 듯하더니 구름이 끼기 시작하는 날씨라 백두산 천지를 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서파시작지점이다.
천지, 장백산 천지는 장백산 화산원추체의 꼭대기에 위치해 있으며, 화산이 분출한 후 자연히 형성된 화산구호이다. 남북길이가 약 4400m, 동서너비가 약 3370m이며 가장 싶은 곳은 373m이며 수면면적이 9.82㎢이며 둘레가 13.1km이다. 천지 수면해발 높이는 2189.1m이다. 장백산은 송화강, 두만강, 압록강 3강의 원천인제 천지는 송화강의 기원이고 중국과 조선의 양국계 호수이다. 천지는 세계 최대, 가장 깊고, 해발이 가장 높은 산산구 호이다. 2000년 장백산 천지가 "해발이 가장 높은 화산호" 세계 기네스 영광을 획득했다.(안내판내용)

우리가 타고 온 차는 주차장에 두고 셔틀버스를 타기 위해 자작나무 숲길을 따라 이동을 한다.

 

 

이곳에서 셔틀버스를 타고 정상 주차장으로 이동한다

 

 

백두산이 보이는데 정상은 구름 속이라 천지를 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곳에서 계단 1442개를 올라야 된다. 힘든 길이다. 나는 지병 때문에 호흡조절이 되지 않아 무지 힘들게 오른다.

 

가마를 타고 오르는 사람들도 있다.

 

백두산은 늦가을이 시작된 듯하다.

 

1442 계단을 힘들게 다 올랐네요.

 

 중국 37호 뒷면에 조선 37호 경계석이다. 

 백두산 천지 지도, 서파와 북파로 북한령과 중국령으로 나뉘어 진다. 예전에는 6호 경계석이라 했는데 지금은 37호 경계석으로 바뀌었다. 

천지 표지석이다.

천지는 구름 속이라 볼 수 없다. 아쉬워서 조금 더 기다려 보기로 한다.

 

천지가 보인다.
 

기다린 보람이 있다. 선명하지는 않지만 천지를 봤다. 이렇게 잠깐 보여주더니 다시 구름 속으로..

 

登顶成功!등반 성공  我真棒!난 대단해

 

이렇게 백두산 서파에서 백두산 산행을 마치고

 

다음은 장백산 금강대협곡을 둘러봅니다.

 

낙타쌍봉

 

뒷면에서 보면 공작개병

 

장백산은 완전한 가을입니다.

 

홍송왕(king of Korean Pine) 우리나라에서는 금강소나무라 부릅니다. 이렇게 금강대협곡을 둘러보고 

 

마사지 예약시간보다 빨리 도착해 호텔 앞에 있는 장백송이 많은  공원을 둘러봅니다. 소나무마다 이름표를 달아 관리하고 있네요. 우리나라에서는 적송이라 하는데. 이곳에서는 장백송이라 한답니다.
 

저녁을 먹으러 어제 간 식당에 다시 갔네요. 저녁 메뉴는 삼겹살입니다.

 

송이 한 근에 2만원이라 하는 줄 알고 무조건 시켰는데 계산할 때 보니 20만원이랍니다. 비싸지만 맛있게 먹었네요. 금년 송이는 중국에서 입가심으로 마무리 하나 봅니다

 

 

저녁을 먹고 소화도 시킬 겸 오늘은 어제 걸은 반대쪽으로 걸어서 호텔로 이동, 하루 일정을 마무리 합니다.

 

3일차(9.17) 오늘일정은 북파 백두산에 올라 천지를 보고 장백폭포를 보는 일정이다북파를 오르기 위해서는 숙소 옆에서 셔틀버스를 타고 이동을 해야 된다. 지금은 중국도 먹고 살만해서 관광지 마다 사람이 아주 많다. 예전에 중국을 생각하면 절대로 안 된다. 인해전술에는 이길 자가 없다. 이른 아침인데도 입장을 위해 줄을 서있다. 중국 사람들도 장백산 서파, 북파 등을 돌아보기 위해서는 한국돈 20만 원정도 들어야 되는데 쉬운 여행길이 아니란다.

 

셔틀버스에서 내려 이런 짚차를 타고 북파 정상까지 오른다. 예전에 이런 차를 우리는 빵차라 했는데 

 

정상오름길 구름 속이다. 오늘도 천지를 못 보나 보다 하고 조금 기다렸다. 내려가기로 하고 기다린다.

 

갑자기 구름이 걷히고 천지가 보인다. 이런 행운이.

 

아름다운 백두산 천지의 모습이다. 백두산천지를 찍으려고 무거운 DSLR카메라를 들고 왔는데 렌즈가 고장이나 셔터가 눌러지지 않는다. 내가 미친다.

 


 

다시 구름이 몰려온다.

 

다시 구름이 걷히고

 

천지를 보기 위해 오르는 사람들

 

천문봉 정상

 

북파를 오르고 있는 사람들, 세계의 유명한 관광지를 돌아다니다 보면 유럽 사람들이 가장 먼저와 개척을 하고 다음은 일본사람, 다음은 한국사람, 그다음은 중국사람들이 들어오게 되면 그 관광지는 다시 가면 인해전술에 밀려 다른 나라 사람은 찬밥신세가 된다.

 

이렇게 백두산 천지를 운 좋게 구경하고 내려온다.

 

짚차를 타고 내려와 북파에서 천지 오르는 것을 마무리하고 장백폭포로 이동

이곳은 완전한 가을입니다.

 

온천지대

 

죽기 전에 꼭 한번 보고 싶었던 장백폭포 장엄합니다.

 

 

온천수로 계란을 익혀 팔고 있다. 하나 먹으면 십년이 젊어진다는데 난 2개를 먹었다.

 

버스를 타고 내려오다 중간에서 내려 녹연담에 들러 구경을 해본다.

 

시장구경을 위해 서시장에 들렸는데 너무 늦게 도착해서 문을 닫고 있어서 간단하게 필요한 것 몇 가지만 사가지고 나왔다. 입구에서 송이가 좀 핀 것을 팔고 있다. 가격을 물으니 어제는 20만원에 사서 먹었는데 2만원이란다. 가격이 10배차이다. 조금 사다 저녁 먹을 때 먹었는데 20만원 짜리나 2만원 짜리나 맛은 똑 같다.



저녁을 먹기 위해 기다리다 보니 연길에 야경이 시작된다. 상해와 같이 유람선은 없지만 나름 멋지네요

 

저녁을 먹고 호텔에 가면서 요즈음 뜨고 있는 연길대학교 앞에 있는 건물에 간판의 조명을 구경하고 숙소로 이동. 이렇게 하루일정을 마무리 합니다.(사진 박순이)
 
다음날은(9.18) 아침부터 서둘러 공항으로 이동하면서 농협에 들려 필요한 농산물을 구매하고 난 능이버섯을 사가지고 왔는데 각시자기는 향기 때문에 싫단다. 비싼 능이 아지트에 가지고 가서 먹어야 될 듯하다.
 
한국으로 나오는 비행기가 연착되어 한 시간 정도 늦었지만 백두산 34일 여행을 아무런 사고 없이 우리가 보고자 하는 것 전부를 본 멋진 여행을 마무리 합니다. 함께하신 모든 분들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다음에 백두산을 갈 기회가 된다면 6~7월 야생화가 만발할 때 야생화 촬영이나, 겨울 백두산에 다시 한 번 가보고 싶어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