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날 제1캠프에 있던 영재, 수근이, 제1캠프의 거주성이 불량하여 2명이 취침하기도 어려운 곳이라는 판단하에 5,300미터 지점에 텐트를 쳤다. 7월 14일, 전대원 베이스캠프에서 제1캠프, 5,300미터 캠프에 올릴 식량장비등을 체크하여 놓고 베이스캠프로 내려왔다. 무슨일 때문인지 18일이 되었는데도 쿡은 도착하지 않았다. 캠프를 떠난 지 2주일이 넘고 있었다. 기다리다 지쳐 정원택, 김영재대원을 제1캠프로 출발시켰다. 내일이라도 쿡이 도착하면 고정자일을 받아 출발하려는 계획이었다. 19일, 정수근대원이 제1캠프하단벽에 설치되어 있던 고정자일을 400미터 철수해서 5,300미터, 예비 제2캠프로 올라갔다. 제1캠프를 기점으로 상부에 4명의 대원이, 그리고 베이스캠프에는 나와 박정순 김향순이 머물고 있었다. 이날 오후에 쿡이 도착했다. 그는 5시간 차이로 자일을 인계받지 못했다며 축제기간, 교통편 등 여러핑계를 댔다. 그런 쿡이 한없이 원망스럽기만 했다. 정원택, 조은철이 2일간 보수작업으로 데포캠프, 제1캠프 구간 벽에서 철수한 고정자일을 복구시켰다. 이어 21일, 3일간 휴식을 취한 대원들은 제3캠프로의 개척에 나섰다. 가파른 설면을 올라 수직 꿀르와르 우측 리지상의 설사면을 등반한다기에 나는 좌측능선이 상부로의 연결이 용이할 것 같다고 지시해줬다. 이들은 급한 설사면에 80미터 고정자일을 설치하고 평평한 설전에서 점심을 먹었다. 한낮의 날씨는 한여름 날씨만큼이나 더웠고 강렬한 햇빛은 등반자를 무력하게 만들었다. 약간 좌측으로 트래버스하여 허리까지 빠지는 50~60도 설사면 등반을 끝내니 오후 4시였다. 고도는 5,900미터, 다시 제2캠프에 도착하니 오후 저녁이 되었다. 루프가르 사르 북면루트는 고정자일을 이용한 등반을 해야 할만큼 급경사가 아니면 힘든 러셀을 해야하는 구간이 계속 이어졌다. 다음날도 깊은 눈을 파헤쳐 확보지점 만들고 고정자일설치 작업을 시작했다. 150미터의 고정자일을 설치하고 다시 수영하듯 허우적 거리며 마지막 벽아래에 도착, 정수근 대원이 완벽한 프론트 포인딩 자세로 벽중간에 스노바 1개와 상단에 스노바2개로 70미터의 고정자일 설치를 완료했다. 그러고 나니 이후는 완만한 구간이 이어졌다. 좌측으로 정상피라밋 아래 있는 콜이 보였다. 그곳에서 3~4시간이면 정상 피라밋 하단부의 제4캠프 (6,450m)에 도달하게 된다. 둘은 정상피라밋의 콜을 향해 나아갔다. 베이스 캠프에서 보면 그곳은 비행접시 모양의 넓고 평평한곳(6,050m)이었다. 오후4시에 그곳에 도착한 대원들은 약간의 장비, 식량을 데포시키고 제2캠프 다시 돌아왔다. 다음날 루트 공격조는 제2캠프에 휴식차 대기했고 2차공격조인 조은철, 정부연락관이 베이스캠프를 출발했다. 이때 제1캠프 위의 '4급바위'를 오르던 조은철 대원이 다급한 목소리로 베이스를 찾았다. 주마링 하던 중 고정자일이 50미터 상부에서 끊겨 내려와 있다는 것이다. 제1캠프로 하강등반하는 것이 상부로 등반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상황이었다. 나는, "은철아 자신을 가지고 천천히 등반해라"고 지시했고 그들은 2시간 동안 낙석에 끊겨 내려온 고정자일을 상단에 연결시키는 작업을 했다. 전대원의 손에 땀을 쥐게하는 아슬아슬한 상황이었다. 24일, 영재, 수근이가 제2캠프를 출발해 오후 3시 6,050미터에 텐트를 쳤다. 제2캠프~제3캠프는 하루에 도달하기에는 너무 먼거리였기 때문이다. 이날 오후부터 계속 눈이 내렸고 베이스캠프에는 천둥번개를 동반한 소나기가 밤새 내렸다. 조은철 대원은 제2캠프 하단부 설벽트래버스 구간에 고정자일을 200미터 설치하고 5,300미터에 대기했고 정부연락관은 제2캠프에 대기했다. 1차, 2차공격조가 악천후 속에서도 순조롭게 등반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음날 새벽, 비행접시 형상(6,050m) 위의 두 대원에게서 "밤새 30여센티미터 신설로 운행이 어렵기 때문에 할루를 대기하겠다"는 무전이 왔다. 이날 나는 베이스캠프에서 '파키스탄 전지역이 구름이 끼어 날씨가 좋지 않다'는 뉴스를 들었으며 스카루드 한 마을이 산사태로 매몰되었다는 소식도 전해들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