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산행발자취/2011년

한국인 최초로 간 당령설산 트레킹

by 에코j 2011. 8. 21.






1. 언제 : 2011.8.6~8.13

2. 어디 : 중국 사천성 깐즈장족자치주 단바현에 위치한 당령설산(5,474m) 하강날하 입구(4810m)

3. 참석 : 19명(노욱,종신,망가,병옥,미옥,영희,박인호,한경수(한맨),정택률(정태산),김홍빈,발자국(이규현),이승창(삼치구이),박장주(솔개),정두칠(미래),추교득(한백),박삼규(야크),안숙영,문오남,안석주)

4. 설명

당령의 위치는 사천성 깐즈장족자치주 동부 딴빠현에 위치하며, 총면적 368km²이다. 웅장한 설산과 그 속에 촘촘히 내재해있는 호수, 따뜻한 온천과원시림, 진기한 동식물, 단체문화탐방, 등산, 트레킹, 생태탐험 등 야외에서 즐길 수 있는 모든 것 들이 갖추어져있는 종합선물세트이다

250만년전 지각운동으로 인해 생성된 이곳은 당령 동부 입구(해발2,780m)에서 당령설산의 주봉(하강랍 夏羌拉)까지 직선거리가 약 21.5km, 고도차가 2,690m이다. 이는 높은 산과 깊은 계곡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다. 이 독특한 지형과 자연기후 조건이 아직까지 이곳을 원시상태의 자연생태지역으로 남아있게 한 것이다. 그런 이유로 이곳은 세계적으로 학술가치가 높은 자연박물관이며 지구의 지질생물, 식물 등을 연구할 목적으로 많은 탐험가와 지질, 생물학계에서 주목하고 있는 곳이다

당령설산은 대설산맥의 북단을 연결하며 서북에서 남동으로 뻗어있다. 주봉인 하강납(夏羌拉, 해발5,474m)은 티벳어로 미인신선산이다. 주위에 28개의 해발고도 5,000m이상의 설산으로 둘려 쌓여 있다.

당령은 당령촌 남쪽 약4km에 2개의 온천을 가지고 있는데 하나는 티벳어로 화약탕이라고 불리 우고 하나는 초원탕 이라고 불린다. 온천은 밤낮으로 3000톤 이상을 방출한다. 최고 온도는 섭씨75도이며 다량의 광물질이 녹아 있다. 신경통, 위장병과 당뇨병, 관절염에 특효가 있다. 그 주위 또한 원시산림지여서 따뜻한 탕 속에서 원시림과 설산을 감상할 수 있다. 운이 좋다면 눈이 내리는 온천탕, 어떤 수묵화로도 표현 할 수 없는 그런 경치를 탕 속에서 즐길 수 있다.

5. 일정

8.6~8.7 : 인천출발~성도~야안~얼랑산터널~루딩~단바~갑거장채

8.8 : 갑거장채~변이향~당령~비기평~호로해~비기평

8.9 : 비기평~당령~당령온천~4000m

8.10 :4100m~하강라입구~용보륭파캠프장

8.11 : 융보륭파캠프장~각락사~용등대초원~팔미~탑공~신도교

8.12~13 : 신도교~캉딩~성도~인천

6. 후기

이번 여름에 어디를 갈까 고민하다 사진한장에 반해 계획을 수립한 당령에 있는 호로해다. 계획수립후 홈피에 공지, 함께할 대원을 모집했는데 18명이 신청, 그런데 중국에서 미래가 합류하기로 하니 19명이나 된다. 후에 몇사람이 빠지고 추가로 신청한 사람이 모이니 전부 19명이 당령설산 트레킹을 중국에 야크여행사와 함께 하기로 하고 도청에서 버스를 이용해 인천공항으로 출발

한달전 모임때중국에 간다는 이야기를 했더니 자기가 직접 비행기를 조정해서 성도에 대려다 준다고 해서 장난이려니 하고 있었는데친구가 정말로 공항에서 기다리고 있다. 덕분에 비행기 탈때마다 혹시 친구일까하는 기대에기장의 목소리를 귀기울여 들었는데 꿈이 이루어진듯하다.

또한 8000m급 14좌 등반중인 김홍빈원정대장이 참여하니 원정대가 힘이있어 보인다. 아울러 스폰서 회사 쉐펠에서 옷까지 스폰해 주니 정말 고마울 뿐이다.

00:30 성도에 도착 현지 여행사팀들과 합류, 당초 계획은 성도에서 하루밤 자고 다음날 하루 내내 차를 타고 이동을 해야 되는데

시간이 아까워 무박으로 단빠로 이동을 하기로 했는데 오늘 역시 얼량산터널이 오후 20:00이후에는 통제를 해서 넘어갈 수 없단다. 03:09 별수 없이 터널들어 가는 고개 시작지점 식당에서 하루밤 노숙을 하며 보낸다.

▲ 06:00 새벽에 일어나 동네를 도는데 방송소리가 나서 가서 보았더니 마을 주민들이 운동을 하고 있다.

그런데 영희는 옛날에 궁후를 했다며 따라서 하는데 제법 잘한다.

역시 직업은 속일 수 없나 봅니다. 병옥이는 중국회화책을 들고 와서 대원들한테 간단한 중국회화를 가르쳐 주고 있다.

식당이 문을 열지 않아 가는 중간에 아침을 먹기로 했는데 왠 걸 얼량산 터널을 지나기 전에는 식당이 없네요..

▲ 8.7 08:50 예상대로 얼량산 터널 2km 전방에서 길이 막혔네요.

터널이 공사중이라 한시간씩 통행을 교행을 한다. 덕분에 마을 주민들이 길거리 먹거리로 사람들을 유혹하네요. 우리는 아침을 먹지 못해서 이것 저것 사서 먹다 보니 배가 든든해졌네요

▲ 8.7 10:14 얼랑산터널지나 2044m 전망대 도착,

그래도 예상보다 빠른 시간에 교행시간이 되어 얼량선 터널을 빠져 나와 공가산 전망대에서 기념촬영 다들 하루밤을 제대로 자지 못했지 아침도 먹지 못했는데도 설레는 마음때문인지 다들 즐거워합니다.

▲ 중국 내륙에서 가장 높은 공가산 모습입니다.

▲ 루딩교

8.7 11:00 루딩도착, 루딩교는 일찍 청나라 강희년간 (1705)에 만들어졌다. 이 다리의 길이는 103미터이고 넓이는 3미터 모두 13개의 쇠사슬로 만들어졌으며 다리의 총 무게는 40t 이 넘는다. 1935년5월29일 모택동이 거느린 홍군이 루딩교를 건너다 국민당군대의 강력한 저항을 받았다. 국민당군은 홍군이 다리를 건너 못오게 다리위의 널판자를 불로 태워 없앴고 맞은 편 보루에서 기관총으로 저항하였다.

홍군은 22명의 투사로 묶은 선봉대가 쇠사슬위에 매달려 국민당군들이 쏘는 총알을 맞받아 공격했는데 끝끝내는 루딩교를 정복하고 대도하를 건넜다. 현재 루딩교에 가면 혁명박물관과 홍군기념비가 세워져 그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루딩은 루딩교로 유명해지며 루딩교는 공산당과 국민당의 옛 전쟁터로서 오늘도 가면 옛 전쟁터의 흔적을 찾아 볼수 있다.

기념탑

이곳에서 처음으로 중국음식을 접한다. 예상외로 잘들 먹는다. 아니 향에 민감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식성이 변한건지 중국 음식 맛이 변했는지 다들 잘먹는다.

▲ 8.7 13:35 대도하 발전회사 건물 앞 도착,

대도하 협곡은 온통 공사중이다. 아니 이곳역시대단위 토목공사가 이루어 지고 있다. 꼭 우리나라80년대 초 같은 꼴이다. 작업을 위해서는 주민이 참아야 된다는 식이다.이곳 역시 댐공사중으로 온통 비포장 도로에 먼지때문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대도하 협곡을 따라 몇시간을 달려 갔는지 모르겠다. 아니 계곡물만 봐도 멀미가 날 정도다.

루딩에서 단바 들어가는 길은 온통 이런 작업을 하고 있다.

정말 우리나라에서는 불가능 한 일이지만 이곳에서는 공사가 우선이다. 그래서 통행하는 차량을 막아 놓고 이런 위험한 작업이 곳곳에서 진행중이다.

▲ 8.7 17:20 수오포 고조루 도착

산비탈을 따라 솟아 있는 고조의 수가 자그마치 168개로서 단바에서 가장 고조가 많은 마을이다. 루딩으로 가는 도로변 전망대에서 만날 수 있는 마을이다. 크기와 용도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지어진 이 석조 건물은 평편한 돌을 쌓아 올렸음에도 오래된 것은 400년 넘게 안 무너지고 지금까지 이를 만큼 정교한 건축기술의 결정체로 평가 받고 있습니다.

갑거장채에서 만난 아름다운 여인

18:35 단바도착, 비포장 도로를 무려 6시간 동안 달려온 루딩 이곳에서 차량에 주유를 하는 시간에 간단하게 쇼핑을 하고 고불고불 고갯길을 따라 갑거장채를 가는데 아슬아슬하다. 아니 왜 이런곳에 마을이 형성되었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19.25에 갑거장채 마을에 도착 입장료 30원을 받고 있다. 민박집을 정하고 그곳에서 저녁식사후 오랜만에 한국에서 가지고 온 소주로 하루 피로를 풀고 잠을 청한다.

저녁을 준비해준 여인들

우리들이 먹을 음식을 해주고 난후 부엌에서 식사를 하고 있는 장족여인네들, 우리가 가지고간, 김치와 김을 주었더니 맛만 보더니 욕심을 내지 않는다.

▲ 8.8 07.17 빵차 6대에 나누어 타고 당령을 향해 출발,출발전에 전망대에 올라 갑거장채를 구경하고다시 단바로 나와 당령으로 이동한다. 그런데빵차기사들이 서로 입을 맞추지 못해 일부는 전망대로 일부는 단바로 바로 내려가서 약간의 불만발생

왜 이런곳에 이런 집을 짓고 살까? 하지만 보기에는 정말 아름답다, 그래서 미인곡이라 하는지도 모르겠다.

장족들의 집

가옥은 보통 4층으로 지어 지는데 1층은 가축우리, 2층은 응접실, 3층은 침실, 4층은 사당으로 구분된다. 3~4층의 꼭대기 모서리 마다 단을 올려 지붕이 마치 왕관 모양으로 만들어져 있는데 이는 사방신을 모시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 09:25 당령마을 가는 길에 만난 폭포,

수량도 풍부하지만 폭포사이에 무지개가 아름답게 피었고, 길가에 복분자가 달렸는데 어찌 맛있던지

당령마을 들어가는 입구에 빵차한데가 고장이나서 후미를 기다린다.

고장난 차는 버리고 좁은차에 2대의 짐과 사람이 타고 그냥 올라온다.

11:20 당령마을(3180m) 도착, 촌장집에서 점심을 먹고 산행준비를 마친후, 말에 짊을 싣고 본격적인 트레킹이 시작된다.

비기평 오름길 다들 고소때문에 속도를 조절하면서 천천히 오른다.

14:00 비기평(3800m) 도착, 독립가옥 앞 도착, 아마 이곳은 목장인듯하다.

14:30 비기평 출발,

비기평에서 잠시 쉬었다 배낭은 놓아두고 산행을 시작 그런데 비가 내리기 시작하더니 호로해를 거의 다 오를쯤 비가 갠다 해발이 높아서 그런지 뒤돌아 보니 뒷산은 눈이 쌓였다.

호로해 바로 밑의 늪지대

호로해(4200m)

8.8 16:00 호로해 도착, 이곳이 가을 단풍으로 물들어 있는 모습에 반해 이곳에 왔는데 날씨 탓으로 사진은 별로 입니다. 먼저 온사람들은 한시간째 후미를 기다리며 추위에 떨고 있다. 호수뒤의 산이 현지들이 당령설산이라 부르는 산이란다.

낙엽이 노랗게 물들면 환상일 듯,

이곳 호로해는 가을이 가장 아름답습니다. 여름에 보이는 모습은 별로 인듯합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가을에 다시 한번 와 보고 싶은 곳입니다.

비기평(3800m)

18:20 비기평에 다시 도착, 비기평 초원에서 하루를 묵는다. 하지만 다들 고소때문에 고생들을 한다. 그런데 고소와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은 캠프파이어를 하며 즐겁게 놀다 잠을 잔다. 하지만 난 고소로 완전히 맛이 갔는데 비아?라를 먹었더니 상태가 많이 좋아졌다. 하지만 고소에 한번 맛은 몸은 쉽게 회복되지 않는다. 그냥 밖에서 비박을 하는데 무지춥고 하늘에 별을 바라보는 모습은 거의 환상이다.

비기평 내림길에 보이는 이끼풀

꽃밭이 너무 좋다며 누워서 쉬고 있다

내림길에 꽃과 산의 모습이 너무 좋다며 사진한장 부탁

▲ 내림길에 바라본당령마을 모습

다시 당령에서 잠시 쉬었다.

본격적인 트레킹을 위해 짐도 다른말에 옮겨 싣고, 온천을 향해 출발합니다.

아마 정확하지는 않는데 하강날하를 넘어가는 장족들은 아마 넘는 사람들이 따로 있는 듯.

▲당령온천(3200m) 도착, 후미에서 천천히 오르는데 사진에서본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온천이라는 생각에 가서 확인해 보니 온천이다. 그런데 주위가 너무 지저분하다. 그래서 후미조는 온천에서 잠시 휴식를 취하면서 피곤한 발의 피로를 풀었다 오른다. 이곳이 1호온천이라 한답니다.

▲ 12:453호온천,

계곡 건너에 허름한 텐트가 있고 사람들이 쉬고 있다. 가서 보니 3호온천이란다.

하지만 이곳은 물이 너무 뜨거워 발을 넣기가 힘들 정도다.

4000m에 캠프사이트

먼저 간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저녁을 준비한다. 당초 계획은 당령온천에서 하루밤을 자기로 했는데 이곳까지 오른것이 등반성공에 가장 잘 한것 같다. 현지인들은 38000이라 했는데 나의 고도계로 4000m다.

마부들이 저녁 먹을 준비를 하고 있다.

그런데 이사람들은 외국사람들과 접촉이 별로 없는지 전혀대화가 통하지 않는다. 오로지 하는 말은 장족말 뿐이다.

▲ 8.9 07:50 캠프장 출발,

오늘 가야될 길은 멀기만 하다. 아침부터 서둘러 산행을 준비하는데 우리만 바쁘지 현지인들은 하나도 바쁘지 않다. 컨디션이 좋지 않은3사람은 마을 타고 오르기로 하고,나머지는바로 출발을 한다.

늪지대를 지나면서는 길을 찿기가 쉽지 않다. 이곳에 길을 찾는 방법을 유심히 봤더니 말 똥의 흔적을 찾아 따라가는 방법이다.

드디어 설산이 보인다.

아무런 자료도 없이 트레킹 계획을 수립했는데 어제도 호로해에서 바라보는 당령설산에도 눈이 하나도 없었는데

오늘 역시 눈이 없어 걱정을 했는데 눈이 보이니 어제부터한 걱정이 사라지는 순간이다.

다들 고소로 힘들지만 눈을 보고 난 후로는 힘이 나는지 열심히들 오릅니다.

하지만 앞으로 가야될 길도 멋지고 뒤돌아 보는 모습역시 짱입니다.

▲ 저위능선까지 올라야 되는데 언제 오르지 하는 걱정보다는 주위 모습에 반해 힘든줄 모르고 쉬엄쉬엄 오른다.

▲ 10:09 현지인을 만나다,

캠프장에서 한시간 넘게 오르니 현지인 2명이서 약초를 캐기 위해 여기에서 머물고 있다. 이가 아프다고 약을 달라고 해서 아스피린을 주고 온다. 더 주고 싶었지만 예전 파키스탄에서 현지인이 아프다고 해서 아스피린 두알을 먹으라고 주었더니 밤에 응급실로 실려갔다온 생각이 나서 반절 쪼개서 한알만 주고 왔다.

▲ 구름의 모습이 꼭 주전자의 모습같지요..

우리가 올라온 계곡

▲ 우리가 올라야 될 길

후미조 다들 힘들어 합니다. 하지만 고지가 저위다. 조금만 더 힘을 내자...

먼저 오른 사람들이 후미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 12:40분 19명 전원이 하강라입구(4810m)에 도착했습니다. 올라서니 빙하도 보입니다. 하지만 날씨가 우박이 내리고 있으니 우리를도와주지 않아 사진이 별로 입니다. 추운데 30분 이상을 기다리다 사진을 몇장 찍고 내려왔는데 조금서운합니다.

내려와 자료를 조사를 해보니 이상합니다. 그래서 인터넷의 고산리스트를 전부 확인해 봐도 당령설산이라는 산이 없네요. 중국에 전화로 재확인 부탁 했더니 연락이 왔네요. 호로해 뒷산을 현지인들인 당령설산이라 부르고 우리가 오른 하강납능선 좌측 만년설이 있는 곳이 주봉인 하갑납(夏羌拉, 해발5,474m)은 티벳어로 미인신선산이라 한답니다.

앞으로 내려가야 할 길이 멉니다. 하강을 서두릅니다.

하지만 나와 한맨님은 하늘의 구름이 곧 걷힐것 같아 30분이상을 머루르다 내려왔네요,

내림길에 바라보는 모습이너무 멋져 피곤한지도 모르겠습니다.

선두조는 휴식중

빙하 밑에 있는 호수입니다. 이곳에서 캠핑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옥과초원에 두 가구가 야크를 키우고 있다.

이곳은 아마 인위적으로 산불을 냈는지 그 좋고 큰 나무가 한나도없습니다. 장족사람들의 살아가는 방법이라지만 보기에는 별로다.

17:45 트레킹 종료지점 도착

경운기가 오를 수 있는 곳에서 산행이 끝이 났으나 융보륭파까지 내려가는 길이 4Km란다. 경운기를 불러 타고 가기로 한다. 사람이 많다 보니 짐 한경운기, 사람 두경운기를 타고 융보륭파로 내러간다.

▲ 19:04 융보륭파 도착, 마을주민집에 도착

융보륭파에 내려갔더니 먼저간 사람들이 텐트를 쳤는데 시간이 늦어 장족민가에서 식사를 하기로 하고 들어갔는데 집이 아주깨끗하고 준비한 음식이라는것이 감자 볶음하나다. 야채와 고추장으로 간단하게 저녁을 해결하고 캠프장에 있는 온천에 들어가산행의 피로를 푼다.

▲ 8.11 07:45 현지인 집에서 식사, 08:29 마을 출발,

아침에 일어나 온천에서 목욕후 융보륭파마을에서 아침을 먹고 가족들과 기념촬영후 작별

우리는 이곳에서 5km를 다시 경운기를 타고 제르스 마을로 출발

▲ 09:54 제르스(각락사)마을 도착, 경운기에서 버스로 짊을 옮겨 싣고버스를 타고 용등대초원을 달려간다. 대초원을 달리면서 하는 생각이 이 높은 곳에 차로 4시간을 다려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 평야가 있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의 대 평야 입니다.

▲ 12:15 팔미(3380m)에 도착, 이곳 역시 오는 길이 도로 포장공사로 길이 엉망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한맨님의 차멀미로 고생을 많이 한다. 팔미에서 점심을 해결, 나름대로 맛있다. 현지 약국에서 멀미약을 사먹은 후로는 조금 나아진듯

▲ 탑공에 있는 목아금탑사

진흙으로 부처(토불)를 만들고 계시는 스님, 기존에 만든 토불을 찍어보라고 해서 찍어서 보여 주었더니 아주 만족해 하신다.

지금한창 불사 중이다.

야리설산

드넓은 초원고지다. 이곳은 말을 타라는 사람들과, 옆에 산을 오르는데도 입장료를 요구합니다.

갑장이라고 옆에 있는 산에 올라서 기를 받고 왔다고 홍빈이한테 기를 전해주고 있다. 초오유 등반 성공을 기원한답니다.

신도교 호텔에 도착 저녁 식사때까지 시간이 너무 많아 시내 구경을 나서기 위해 부른 삼륜차, 1인당 2위엔이랍니다.

전세계 어디를 가든 꼬치 구이는 맛있는지 다들 사람이 많다.

그런데 다른점은 조리사의 복장의 차이가 가장 큽니다. 담배 꼬라물고 있는 모습 죽입니다.

신도교시장에 들어가 건포도를 사서들 맛있다고 먹고, 야크고기를 손질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세상어디를 가든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은 비슷한것 같습니다. 치즈를 사고 싶어 물어보지만 이곳에서는 야크 치즈를 만들지 않는다네요. 요구르트만 있답니다.

신도교호텔에서 저녁식사 이제는 다들 특유의 향에 질리는지 잘 먹지 못한다. 신도교가 해발3400m나 되다 보니

고소에 적응이 잘 안되는지 일부 사람들이 힘을 쓰지 못한다.

호텔로 돌아와 오늘 저녁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다들 잠을 자지 못하고 산행이야기에 모두 행복해 합니다.

신도교 호텔로비에서 가이드와 침06:30에 만나기로 했는데 차량이 없다. 그래서 짐을 놓아두고 식사하러 이동, 식사하고 왔더니 차에 카고빽을 전부 실어두고 준비완료 상태다

저도산

▲ 성도에 도착한 시간이 너무 늦다. 이유야 단한가지 기사때문이다. 정말 운전을 갑갑하게 해서 19:00가 되어서야 성도에 도착, 당초에는 변검을 보기로 했는데 시간이 없어서 사천성에서 유명하다는 샤브샤브를 먹었다,7일동안 다들 음식다운 음식을 못먹어서 그런지 다들 행복해 한다. 더워서 다들 땀을 흘리며 맛있게 먹으니 나역시 기분이 최고입니다. 특히 한맨님이 식당에서 웃는 모습은 오늘이 처음이다.

성도공항에 도착, 인천가는 비행기가 한시간 연착이란다. 미래와 이사장님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아쉬운 이별,

함께한 여행 덕분에 즐거웠다 미래야,

약간의 짜증 석인 대원들의 이야기를 웃으며 받아주며 여행을 즐겁게 해준 이사장님 고생 많았습니다.

인천에 도착 한백이와 야크는 대구로 바로 내려간다고 남고 나머지 사람은 미리와서 기다리는 버스를 탄다. 역시 우리나라가 좋다는 생각을 하며 전주에 도착, 아중을 게장백반으로 해결하고, 미옥이가 광주팀을 모셔드리고, 6박8일간의 일정을 아무런 트러블 없이 마무리 한다. 함께한 모든분들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이번의 여행이 여러분의 가슴속에 오랜시간 동안 기억되시길..

다음에 또 어디를 갈까요?

구글어스 항공사진입니다. 우리가 다녀온곳을 확인해 보세요..

나이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듯 고산에 너무 강한 모습을 보여준 발자국형님

하바설산때는 말한마디 안하더니 이번에는 말도 많이 하고 항상 앞에서 고소가 뭐여를 확실하게 보여준 박장주씨

고산에서는 항상 강한 힘을 보이더니 내려와서는머리가 아프다는 특이 채질의 산돌이 형님, 저산병이라는 신조어를 만드셨습니다.

현지 체질인 삼치구이 형님, 특히 현지 자료조사를 하도 많이해 오셔서 저와 이사장님을 당황하게 만들었지만, 그래서 더 많은것을 보고 배운것 같습니다. 감사

초오유등반을 위해고소적응차 왔는데 역시 고소는 힘들다며 함께한 사람들을 즐겁게 한 김홍빈님 이번 초오유 등반에 성공하길

이번에는 힘들다는 이야기를 한번도 안하고 고소에도 잘 적응한 망가님

선배들을 즐겁해 해준 영희

고산등반이 처음이라 걱정을 많이 하더니 잘 적응한 숙영낭자

고산에서는 잘 적응하더니 내려와서 고소에 시달린 미옥

중국에서 합류한 미래, 덕분에 트레킹이 즐거웠다. 나중에 한국에 나오면 한잔하자.

▲선배들 술 동무하느라 고생한 한백

고소에는 약하지만 선후배들의 중간자 역활을 확실하게 해준 병옥

나중에 등반에 참여했지만 우리팀의 막내 역활을 확실하게 해준 야크, 고생 많이 했다.

이번 등반중에 가장 많이 움직이며 사진을 찍어준 한맨님, 또한 멀미때문에 고생을 많이하셨습니다. 다음부터는 멀미약 가지고 오세요

정태산님 고산등반은 처음이라 무지 힘들다더니 오를때는 잘도 오릅니다. 하지만 내려와서는 입술이 다 불어터 고생좀 했습니다.

3800m 이상부터는 고소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종신, 다음부터는 고산등반 안합답니다.

이번 등반을 통해 새로운 사람, 새로운 사업방향 등 많은 구상을 했는데 돈 많이 벌기를..

좋은 고모 만나 새로운 경험을 하고 온 석주, 아마 앞으로 살아가면서 어려운 일이 있을때 이번등반을 생각하면 많은 도움이 될거다.

원정대장 임노욱

사진한장에 홀딱 반해 선택한 산, 이름등 정확한 자료가 없어서 무지하게 고생한 원정이었던것 같다.

다음부터는 다시는 하지 말아야지 하면서 내려왔는데 벌써 다음에는 어디를 가면 좋을까 하는 등신.

중국현지 야크여행사 대표 이정철님 가장 고생많이 하셨습니다.

이번 등반을 주도적으로 이끌어준 트레킹회사 직원인 샤오주

현지인 쿡이라고 대려왔는데 왜 대리고 왔는지 이유를 잘 모르게 한 현지인 샤오마

3000m에서 태어났다더니 고산에서뛰어다니 면서 등반을 도와준 샤오위, 하지만 반팔에 반바지 입고 뛰어다니더니 감기걸려 고생을 많이 했지요

현지인 마부들 이제 겨우 17~18세 나이란다

'산행발자취 > 2011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만복대의 일몰과 일출  (0) 2011.10.03
소나숲에 피어난 구철초  (0) 2011.10.03
영재와 수근이를 만나러  (0) 2011.07.31
야생화가 보고 싶어 오른 만복대  (0) 2011.07.24
지리산 화엄사 주변돌기  (0) 2011.07.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