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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발자취/2005년

선인들의 흔적을 찾아

by 에코j 2005. 11. 21.

1. 일시 : 2005.11.19~20
2. 어디 : 지리산
3. 코스 : 운암-노장대-지장사-환희대-선열암-독바위-신열암-고열암-의론대-선녀굴-선녀동-송대
4. 참석 : 노욱, 종신, 정호, 미옥, 승진
5. 산행후기
- 지리산이 경방으로 막혔다. 목요일 당초계획은 금산인데 시기적으로 금산은 의미 없는것 같고, 어디를 갈까 가기로 한사람들이 승진이부터 도착하더니 종신, 정호형님, 미옥언니가 먼저 출발 강쇠호텔에서 만나기로 한다. 점방문을 닫고 과속을 일삼아 호텔에 도착해보니 거의 달빛과 별빛이 거의 환상이다. 아울러 마가목 술까지 들어가니 행복할 뿐이다.

20일 06:20
알람소리에 일어나 망가님을 남원 광한루에 모셔다 드리고 돌아와서 아침을 먹고 오늘 산행코스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김종식의 유류두록을 따라 산행을 하기로 하고 출발, 송대마을에 차를 한대 두고 운암마을로 들어선다.





운암마을 가는길에 있는 노장대 루트 설명


해동검토 주차장에서 본, 운암마을


출발전에 기념촬영


무술연습중....

운암마을 이곳은 수많은 산행기에서 여러번 봤지만 와보기는 처음이다. 해동검토무술원 주차장에 차를 파킹시키고 산행준비를 마치고 기념촬영후 산행시작, 주차장 바로 위에서는 검토 무술생들이 훈련중이다. 칼로 대나무 자르기등..



해동검도무술원앞에 익은 감..

사위질빵..

해동검도무술원앞에서 노장대가는길로 올라가다보면 마지막으로 집이 보이고 국립공원 출입통제 이정표가 보인다. 이곳부터 본격적인 등산로가 시작이다.


노장대로 추정하는 양민거주지 설명판..

김종직의 유류두록(1472년)에 보면

전 생략 "지장사에 도착했다. 길이 가닥이 났으므로 말에서 내려 짚신을 신고 대나무 지팡이를 짚고 올라갔다. 골짜기와 숲이 맑고 깊숙하여 벌써 아름다운 경치를 짐작할 수 있었다. 1마장쯤 가니 환희대라는 바위가 있었다. 태허와 백원이 그 마루턱에 올랐다. 그 아래는 천길이나 되는데, 금대암, 홍연암, 백련암 등 여러 절이 굽어 보였다." 생략

노장대는 유류도록에 보면 환희대 전에 있다. 하지만 함양군에서 만든 이정표는 독바위를 노장대라 표시되어 있다. 모든사람들이 그렇게 알고 있지만 지금에 와서는 이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여러사람들의 노력에 의해 밝혀지고 있다. 지금의 양민거주지이정표가 있는곳이 노장대 마을이 있었단다. 이곳이 노장대. 이곳에서 우측을 보면 조그만한 능선이 있다. 이능선을 넘어서면. 이곳에 터가 여러게 있다. 아마 이곳이 지상사터일거라는 생각을 하고 다시 돌아와 산행시작(잘못되었을 수도 있음)



노장대를 지나 20분정도 오르니 능선에 다다르게 된다. 능선에 바위가 있다. 이곳에 올라서 보니 문수사, 금대암이 보인다. 그렇다면 이곳이 바로 환희대... 잠시 휴식을 하면서 선인의 글과 비교 확실하게 일치. 환희대라 확신을 하고.. 다시 출발...



<선열암을 찾다가...>

유류두록 "먼저 선열암을 찾았다. 암자는 가파른 절벽 아래에 지었다. 그 아래로 맑은 샘 두 개가 있었다. 담장 밖에는 바위 홈으로 물이 흐르는데, 물방울이 오목하게 파인 납작한 바위 위로 떨어져 괴어 있었다. 마치 깨끗한 못과 같았다. 그 틈에는 몇 마디쯤 되는 적양과 용수초가 듬성듬성 나 있었다. 곁에는 돌계단이 나 있고 등넝쿨 한 가닥이 나무에 매어져 있었는데, 그것을 붙잡고 묘정암과 지장암에 오르내렸다. 법종이 "한 비구승이 참선하면서 우란분을 만든 뒤 구름처럼 노닐다 어디론가 사라졌다"고 하였다. 지금은 돌 위에 오이와 무가 심어져 있고 두어 되의 곡식을 찧을 만한 조그마한 절구통이 놓여 있을 뿐이다. "

선열암을 찾기 위해 독바위 200미터 쯤에서 우측으로 접어 들어 3시간 이상 해메고 다녔지만. 찾을수 없었다. 뭐가 잘못되었는지 도저히 알 수 없다. 그래도 조금은 서운해 노란 리본을 따라 500미터 이상 내려가 보지만. 큰바위는 있지만 터의 흔적은 발견할 수 없어.. 나중에 와서 다시 확인해 보기로 하고 독바위를 오른다.


<독바위 모습>

먼저 간 일행들은 알미늄사다리를 타고 로프를 타고 독바위 정상에 올라 지리산을 조망하고 있다. 선열암을 찾느라 힘빠진 난, 정상오른것을 포기 하고 밑에서 지리를 구경한다. 정말 동부의 새로운 맛이다. 아니 이래서 민족의 명산 지리산인가보다.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아주 멋진 조망이다.


독바위에서 바라본 지리산 조망 특히 제일 뒤가 반야봉



우리가 올라온 운암마을 그리고 계곡(계곡이름은 모름)


솔봉능선과 두류능선



독바위에서 바라본 지리의 모습



휴식후 사다리를 내려서니 미옥언니가 배고파서 못간다고 아우성이다. 물이 없어 중식을 해결하는 방법이 업어 비상식을 꺼내주고 허기를 달랜후 다시 안락문은 어떻게 생겼을까 하는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가서 확인후 다시 돌아와


기와장 흔적



사람이 기거한 흔적


축대의 흔적..

"다시 신열암을 찾았다. 중이 없는 빈 암자였다. 이 역시 치솟은 벼랑을 등지고 있었다. 동북쪽에는 독녀암이라는 바위가 우뚝 솟아 있었다. 그 높이가 천여 자나 되고 다섯 가닥으로 갈라져 있었다. 옛날 어떤 부인이 이 바위 사이에다 돌을 포개어 집을 만들고 혼자 살면서 도를 닦은 뒤 공중으로 올라갔다는 전설이 있으며, 그 때문에 그런 바위 이름이 붙었다는 것이다. 법종이 한 말이다. 쌓아놓은 돌이 아직도 있었고 잣나무가 바위 중턱에 나 있었다. 그곳에 올라 가려면 사다리를 놓고 잣나무를 붙잡고 바위를 돌고 돌아야 하는데, 등과 배가 모두 벗겨진 뒤에야 꼭대기에 이룰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목숨을 내건 자가 아니면 올라갈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따라온 아전 옥곤이와 용산이는 벌써 올라가서 발을 구르며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내가 일찍이 산음지방(현 경남 산청군)을 오가면서 이 바위를 바라보았을 때, 여러 산봉우리와 함께 하늘을 받치고 있는 듯이 솟아 있었다. 지금 이곳에 와서 보니 몸이 오싹하고 황홀하여 내가 이 세상 사람인가 의심스러울 정도이다."

삼거리에서 조금 내려서서 조금 돌아서니 리본이 많이 있다. 유심히 보니 축대흔적이 있고. 샘터가 있고. 최근까지 누가 기거를 했는지. 바위틈의 땅바닥이 정리가 잘되어 있다.. 샘을 확인해 보지만 샘의 흔적은 있는데 물은 말라 있다..



고열암의 굴

고열암의 샘터


"조금 서쪽으로 돌아 고열암에 이르렀다. 해는 이미 저물었다. 그 서쪽에는 의논대가 있었다. 극기 일행은 뒤에 쳐졌다. 그래서 나 혼자 지팡이를 짚고 삼반석에 오르니 발 아래에 향로봉과 미타봉이 내려다 보였다."

신열암을 둘러보고 조금 내려서니 벽송사, 송대마을 삼거리가 나온다. 이곳 이정표에서 바로 앞으로 가는 쪽에 일의 흔적이 있어 10여미터 전진해 보니 암자터가 보인다. 가서 확인해 보니 사람이 기거했던 흔적인지 모르지만 스치로폴, 바게스등이 널려있고, 샘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바위에는 오래되었지만 불에 그으른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이곳이 바로 고열암이다. 배고프다는 미옥언니를 위해 점심을 먹고 가기로 하고 중식을 준비한다. 난 내려가 차를 운전하기 싫어 술 두잔을 마셨는데 술이 취해 밥도 먹지 못하고 바로 떨어져 한숨잔다. 아마 빈속에 술을 먹어서 그런가 본다. 잠을 자고 있는데 내려가자고 깨운다. 다시 삼거리로 돌아와. 송대마을 쪽으로 방향을 잡아 내려선다.



의론대에서 바로본 독바위(독녀암)

<상래봉의 모습>

"법공의 말에 의하면, 절벽 아래에 석굴이 있다고 한다. 옛날 이 석굴에는 노숙과 우타가 살고 있었는데, 그들은 이미 해탈한 세 승려와 함께 이 돌에 앉아 불교의 진리를 논하다가 문득 도를 깨쳤다고 한다. 그래서 의논대라는 바위 이름이 붙은 것이다."

의론대에 도착 독바위 조망이 아주 멋지다. 아울러 바로 옆에 보이는 상래봉역시 아름다울 뿐이다. 상래봉은 송대마을있는 견불사에서 바라보면 부처님의 얼굴모양과 같다고 해서 이곳에서는 부처를 모시고 있지 않다는데 들어가 확인은 해보지 못했다...





선녀굴의 전경..


선녀굴의 샘


선녀굴...


선녀굴의 조그만한 바위 속을 들어서면 이렇게 넓은 공터가..


<선녀굴의 비트 설명>
의론대까지 해서 김종식선생의 탐사 산행은 마무리하고 송대마을을 향해 내려선다. 선녀굴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선녀굴. 정말이지 천해의 비트다. 밖에서 보기에는 굴 안에 그렇게 멋진 비트가 있으리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그래서 최후의 생존자 정순덕이가 머무르고 있었겠다.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송대마을의 모습


송대마을에 있는 "지리산빨치산 루트 안내소"

선녀굴을 지나 두번의 계곡을 건너 서니 능선길이 편해진다. 그러고는 능선사이로 송대마을이 보인다. 지리산빨치산 루트 안내소에 들려 잠시 구경을 하고..


상래봉의 모습.... 부처님 얼굴과 비슷한가요...


마지막 기념촬영..

송대마을에서 기념촬영후.. 운암마을에 들려 차량을 회수한후 하루 산행을 마무리 한다. 정말 배고파 힘이 들었지만 의미 있는 산행이 었던것 같다. 산행에 참여하신 모든 분들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용유담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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