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언제 : 2009.12.12~13
2. 어디 : 지리산
3. 코스 : 금계마을~운서마을
4. 참석 : 노욱,종신,병옥,망가,미옥,영희,선자
5. 후기
에코산악회에서 지리산길 첫번째구간 운봉에서 주천까지 걷기를 마치고
운봉에서 작별을 고한후4번째 구간을 위해 금계마을로 이동한다.
금계마을 포장마차는 오늘도 막걸리가 떨어졌다니 할말이없다.
이곳 저곳 돌아다니며 잠잘 자리를 찾아보지만 적당한 곳이 없어
폐교에서 그냥 자기로 하고
후발대를 기다리다 지루해 와불모습을 확인하러 올라가 보았다.
와불의 모습이라는데 구분이 되는지 모르겠네요
저도 알 수 없어 개인교습을 받고서 와불이라는것을 발견했네요
저녁밥을 준비하고 있는데 후발대가 도착
그런데 먹을것이 너무 많아 어떻게 다 먹어야 될지...
걱정입니다.
한잔하고 피곤해 난 먼저 잠자리에 들었는데 가위바위보 소리에
잠자기 힘들더이다.
지리산길 네번째 구간 개념도
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 의탄리와 함양군 휴천면 동강리를 잇는 15km의 지리산길. 이 구간은 지리산 자락 깊숙히 들어온 6개의 산중 마을과 사찰을 지나 엄천강을 만나는 길이다. 구간별 주요 지명 : 금계마을 - 의중마을 - 서암정사 - 벽송사 - 벽송사 능선 - 송대마을 - 세동마을 - 운서마을 - 구시락재 - 동강마을 금계동강 구간은 사찰로 가는 고즈넉한 숲길과 등구재와 법화산 자락을 조망하며 엄천강을 따라 걷는 임도 등으로 구성된다. - 지리산길에서 펌
아침에 일어나 아침을 준비하는 사이 미옥이와 함께 송전교에 차량을 대포하고 돌아와
아침을 먹는데 병옥이가 도착하고 오늘 밤 숙직이라 서둘러 산행을 시작한다.
의평마을 위해 의중마을이 있다는 사실을 오늘 처음으로 알았다.
의탄교에서
나 대학다닐때는 이 다리가 현수교였는데
다리가 홍수에 사라진후 다시 만들어진 다리다.
의탄마을까지 가기 싫어 논둑을 가로 질러 간다.
의중마을의 당산나무
고려시대 의탄소(義灘所)라는 지방특산물 탄(숯, 灘)을 중앙에 공납하기위해 만들어진 특수행정구역인 소(所)였다는 유래에서 가운데 있는 마을이라 의중이라는 이름의 내역을 갖고 있다. 마을 어귀에는 의중, 의평, 추성마을을 지키고 이어주는 600년 묵은 느티나무 당산목이 있고, 마을 안에는 당산 느티나무 신목이 든든히 마을을 지키고 있다. 마을 뒤 산 쪽으로는 서암과 벽송사로 가는 숲길이 있다. 지금은 계곡을 따라 도로가 나있어 발길이 뜸해졌지만 절로 가는 숲길로서 옛길의 정취와 그리움이 듬뿍 묻어있는 고즈넉한 길이다.
철을 잃은 쑥부쟁이
예전에 추성리 가는 길이 만들어지기 전에는
의중마을에서 벽송사로 이어지는 이길을 따라 걸어다녔다는데
지금은 찾는이 없는 한적하고 아름다운 길이다.
서암정사 길과 만나
옛날 이야기에 한참 열을 올린다.
서암정사에서 벽송사가는길에 있는
아름다운 소나무..
서암정사 가는 포장길과 만나고
벽송사로 가는 길은 사다리를 타고 올라
길은 계속되어진다.
이길의 특지은 고목이 아름다리 참나무가 참 많다.
벽송사 장승
벽송사 목장을 복원시킨듯한 모습이다.
벽송사 주차장 있는곳의 단풍이 아름다운듯하다.
가을이 제격이겠지만.
벽송사 목장승
벽송사모습
조선 중종 15년(1520년) 3월 벽송 지엄대사가 암자를 짓고 개창한 벽송사는 숙종 30년(1704년)에 실화로 불타버린 것을 환성대사가 중건하였으나 6.25때 다시 법당만 남기고 소실되었다.1963년 원응 구환스님이 이곳에 와 이 절을 다시 짓기 시작했으며 1978년 봄에 종각이 지어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벽송사는 6.25 당시 인민군의 야전병원으로 이용되었는데 국군이 야음을 타 불시에 기습, 불을 질러 당시 입원중이던 인민군 환자가 많이 죽었다고 전하며 지금도 절터 주변을 일구면 인골이 간혹 발견된다고 한다. 벽송사는 실상사와 더불어 지리산 북부 지역의 대표적인 사찰이다. 판소리 ‘변강쇠전’의 무대이기도 하고 한국전쟁 당시 빨치산 야전병원으로 쓰였던 아픈 역사를 안고 있다
벽송사는 한국선불교 최고의 종가랍니다.
미인송
벽송사능선의 길은 정말 아름답다.
벽송사능선에서 송대마을 내려서는 길은
지리산길 걷는사람들의 농작물 해손으로 막히고
새롭게 길이 만들어졌는데 그길을 타고 내려오면 견불사 바로위다.
이곳에서 지리산길을 이어갈려면 송대마을 쪽으로 오르다 지리산길과 이어지는데
우리는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내려와 버렸다.
세동마을에 있는 효자비
세동마을
전형적인 지리산 산촌마을로 한 때는 전국에서 가장 유명한 조선종이(닥종이) 생산지로 주변 산에는 닥나무가 지천이어서, 닥나무를 삶고, 종이를 뜨는 일로 분주한 마을이었다. 불과 50년 전 만해도 이 마을의 모든 가옥은 산과 계곡에서 자라는 억새를 띠로 이어 얹은 샛집이었다. 종이 뜨는 일상과 샛집 지붕의 아름다운 산촌 풍경을 이젠 볼 수 없어도, 바위를 담으로 이용한 집, 너럭바위에 앉은 집, 바위틈으로 솟는 우물 등 ‘자연 속에 세 들어 사는’ 산촌마을의 모습은 지금도 변함없다.
이곳에서 다시 지리산길과 만나고
지리산청정에서 바라본 동강의 모습
송전교에 차를 대포해놔
미옥이는 차를 가지고 내려오고
우리는 길을 계속 이어 내려간다.
운서쉼터를 넘어가는 재에서
운서쉼터
전형적인 지리산 산촌마을로 한 때는 전국에서 가장 유명한 조선종이(닥종이) 생산지로 주변 산에는 닥나무가 지천이어서, 닥나무를 삶고, 종이를 뜨는 일로 분주한 마을이었다. 불과 50년 전 만해도 이 마을의 모든 가옥은 산과 계곡에서 자라는 억새를 띠로 이어 얹은 샛집이었다. 종이 뜨는 일상과 샛집 지붕의 아름다운 산촌 풍경을 이젠 볼 수 없어도, 바위를 담으로 이용한 집, 너럭바위에 앉은 집, 바위틈으로 솟는 우물 등 ‘자연 속에 세 들어 사는’ 산촌마을의 모습은 지금도 변함없다.
운호마을에도착 더 가고 싶지만 밤에 숙직때문에 더 가는 것을 포기
다음에 운호마을에서 부터 길을 이어가기로 하고
금계마을에 도착 지난주에 먹지못한
막걸리로 뒷풀이를 하고
하루 산행을 마감..
함께하신님들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