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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발자취/2024년

지리산 불일폭포

by 에코j 2024. 4. 14.

1. 언제 : 2024.4.14
2. 코스 : 국사암~불일평전~불일암~불일폭포~국사암
3. 참석 : 임노욱, 전종신
4. 후기
어디를 갈까 고민하다. 오랜만에 불일폭포에 가보기로 하고 길을 나선다. 쌍계사 가는 길 벚꽃이 끝나서 그런지 한가하니 좋다. 

국사암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오랜만에 국사암에 들렸더니 보수 공사가 한참 진행 중이다.
 

국사암에서 쌍계사 가는 길. 내가 좋아하는 아름다운 길이다.
 

쌍계사에서 올라오는 삼거리
 

환학대, 신라시대 말기의 학자인 최치원 선생은 속세를 떠나 이상향인 청학동을 찾아다녔답니다. 이곳 환학대는 선생이 청학동을 찾아 학을 불러 타고 다녔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오는 바위입니다.
최치원(857~?) : 신라시대의 학자, 자는 고운, 경주 최 씨의 시조, 868년 당나라에 유학, 874년 과거에 장원급제하고 황소의 난 때 토황소격문을 지어서 문장가로 명성을 얻었다. 885년에 귀국, 태안군, 함양군 군수를 역임하였다. 이후 난세를 한탄하여 지리산을 비롯한 각처를 유랑하다가 가야산에서 여생을 마쳤다고 한다.

마족대, 낙엽 때문에 마족의 흔적을 확인하지 못했네요.
환학대에서 불일폭포 방면에 있는 바위로, 말이 지나간 발자국이 있다고 하여 마족대, 마적대 또는 마적암 이라고도 불렀다. 용마의 발자국이 남은 혼적이라고도 하고, 청학동에 살던 고운 최치원이 말을 타고 가다 머물렀던 자취라고도 전한다. 1744년 8월 지리산 청학동을 찾은 이계 황도익은 냉연대라고도 불렀다. 이후 임진왜란 때 조선을 돕기 위해 출병했던 명나라 장수 이여송이 말을 타고 지리산을 오를 때 생긴 말발급 자국이 바위에 새겨졌다는 일화가 더해지기도 했다.

유람록 기록에서와 같이 불일평전은 인근의 불일암, 불일폭포와 함께 한국인의 이상향인 청학동으로 불렸던 곳이다. 그만큼 햇빛이 잘 들고 물이 흐르며 토질이 좋아 먹고살기에 부족함이 없는 곳이다. 
현재의 아늑하고 평화스러운 풍경은 1978년부터 이곳에서 오두막집을 짓고 살았던 고 변규화씨의 작품이다. 그는 사람들이 자연을 벗 삼아 즐길 수 있도록 나무를 가꾸고, 연못을 조성하였으며, 소망탑이라는 돌탑을 쌓았다. 한 때는 야영장으로 사용하다가 현재는 국립공원 관리공단에서 탐방객들이 자유롭게 쉴 수 있는 쉼터로 관리하고 있다. 

 

 불일평전에 집은 무너져서 철거한 줄 알았더니 새롭게 건물을 지었네요. 산신각도 있던데 뭐 하는 곳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불일 산방이 없어지지 않고 새롭게 정비를 했네요.
 

삼신봉 가는 길은 산불방지 기간이라 입산 금지네요. 
 

불일폭포는 고려시대의 승려인 보조국사 지눌이 폭포 입구에 있는 암자에서 수도를 하였는데, 고려 제21대 왕인희종(1180~1237) 이 지눌의 덕망과 불심에 감동하여 불일보조 죽은 뒤에 그들의 공덕을 칭송하기 위하여 임금이 붙여준 이름을 내렸답니다.
그 시호를 따라 이 폭포를 불일폭포라 하였고 그가 수도하였던 암자를 불일암이라 하였습니다. 불일폭포는 지리산 10경 중 하나로 좌측의 청학봉과 우측의 백학봉 사이의 협곡에서 내려오는 물줄기가 60여 미터에 이르며 주변의 기암괴석이 잘 어우러져 장엄하고 웅장한 분위기를 연출합니다.
 

좌(겸재 정선)  우(현석 이호신)이 그린 그림이다.
이렇게 불일폭포를 보고 시원한 물을 마시러 불일암에 들렀는데 물이 나오지 않고 문은 잠겨있고 사람이 기거하지 않는 것 같이 보이네요.

이렇게 간단하게 산행을 마치고 나오면서 피아골 들어가는 입구에서 점심을 먹고 하루 산행을 마무리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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